서 론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야고보서3:8)
사람의 혀는 작지만, 그 영향력은 실로 크다. 야고보서 3장은 혀를 마치 불과 같고, 온몸을 더럽히는 도구로 비유하며, 특별히 8절에서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되새기며, 믿음의 사람은 그 말조차도 주님의 다스리심 아래 두어야 함을 깊이 깨닫게 된다.
혀
야고보는 혀를 가리켜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단지 말조심을 하라는 수준을 넘어서, 혀가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위험한 존재임을 경고하는 것이다. 동물도 훈련으로 길들일 수 있지만, 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말은 혀가 스스로 제어될 수 없기에 성령의 다스림 없이는 결코 참된 절제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신앙적 진리를 내포한다.
혀는 쉬지 않고 악을 행하며, 그 안에는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독은 사람을 속히 죽일 수 있는 치명적인 물질이다. 우리의 말도 누군가의 마음을 꿰뚫고 쓰러뜨릴 수 있다. 한 마디의 험담이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비난과 비방이 관계를 찢어놓는다.
결국 혀는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 다스려지지 않으면 생명을 죽이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혀로 하나님을 찬송하기도 한다. 야고보서 3:9-10은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라고 한다.
즉,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동시에 나오는 모순된 모습이 바로 인간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입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혀는 마음에 있는 것을 드러내는 도구이기에, 혀를 다스리려면 먼저 마음이 성령의 열매로 채워져야 한다.
길들일 수 없는 혀
야고보는 혀에 대해 단호히 말한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니." 이는 단지 혀가 다루기 어려운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죄업 본성의 영역이라는 고백과도 같다. 수많은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 생물까지도 인간이 길들일 수 있지만, 혀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왜일까? 그 이유는 혀가 마음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 (마 12:34) 하셨다. 혀는 단순히 말하는 기관이 아니라, 내면의 상태를 드러내는 거울이다. 그렇기에 혀를 다스린다는 것은 곧 우리의 마음, 본성과 죄의 습관까지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인간의 결심이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야고보는 혀를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묘사한다. 여기서 "쉬지 아니하는"이라는 표현은 혀가 끊임없이 활동하며 악을 만들어내는 속성을 가졌다는 뜻이다. 침묵한다고 해서 혀가 길드는 것이 아니고, 말을 적게 한다고 해서 혀가 성화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안의 죄업 본성이 계속해서 혀를 통해 바깥으로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이 사실 앞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혀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을 성령 앞에 내어 맡겨야 한다. 나의 말버릇, 비판적인 태도, 무심코 내뱉는 상처 주는 말들… 이 모든 것을 자백하고 회개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혀를 새롭게 함을 받아야 한다. 오직 성령님만이 이 길들일 수 없는 혀를 다스리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다스릴 수 없는 혀
야고보는 혀를 “길들일 수 없는” 동시에 “다스릴 수 없는” 존재로 말한다. 이 말은 혀가 우리 마음의 죄업 본성과 본성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말을 한다. 때로는 선한 말을 하고, 사랑을 나누지만, 또 어떤 때는 무의식중에 날카로운 말, 판단하는 말,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혀가 얼마나 쉽게 죄의 도구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은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우리의 말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하게 한다. 우리가 아무리 “이제는 말조심하겠다”, “다시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결단해도, 어느 순간 우리는 또다시 혀로 범죄하고 만다. 이처럼 혀는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본질을 낱낱이 드러내는 도구이다. 혀가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우리의 죄가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우리의 자아가 여전히 중심에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을 삼가라고만 하지 않고, 먼저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말한다. 혀를 바꾸는 길은 혀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성령으로 다스림 받는 것에서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왕 되셔야 한다. 우리의 혀 위에 예수님의 주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입술을 드리며, 말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심을 고백할 때, 비로소 다스릴 수 없는 혀는 하나님의 손안에서 온유함을 배우기 위해 시작한다.
죽음의 독
야고보는 혀를 단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죽음의 독이 가득한 존재로 묘사한다. 여기서 '독'은 단순한 해악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혀는 잘못 사용되면 사람의 영혼을 무너뜨리고 관계를 죽이며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죽음의 독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험담과 중상모략, 거짓말, 비방, 조롱, 교만한 말, 분노의 말, 절망하게 만드는 말… 이 모든 것들이 혀를 통해 흘러나올 때, 사람의 마음은 찔림을 받고, 관계는 금이 가고, 믿음은 흔들린다. 실제로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마음 깊은 곳을 멍들게 하고, 오랫동안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남긴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이 ‘죽음의 독’이 우리 입 안에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그 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독은 때로 사탄이 사용하는 가장 교묘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예수님은 마귀를 "거짓의 아비"라 하셨다. 거짓말과 속이는 말, 무너뜨리는 말이 바로 마귀의 영역이며, 혀는 그 영역에 쉽게 쓰임 받을 수 있는 통로다. 그렇기에 성도는 더욱 깨어 있어야 한다.
혀를 다스리려 애쓰는 것을 넘어서, 혀에 담긴 이 ‘죽음의 독’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깨지고, 정결하게 되기를 간구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 앞에 열남 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라고 기도했다. 혀를 정결케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그분만이 우리의 입술에서 생명의 말이 흐르게 하실 수 있다.
결 론
야고보서 3장은 혀의 실체를 무섭도록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 어떤 사람도 혀를 길들일 수 없고, 혀에는 쉬지 않는 악과 죽음의 독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이는 곧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죄의 본성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매일 말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말이 생명의 통로가 될 수도 있고, 죽음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혀는 작은 불과 같아서, 온 산을 태울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그렇기에 혀를 다스리는 것은 단순한 자기 절제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싸움의 영역이다. 혀를 다스리는 유일한 길은 내 혀를, 내 마음을, 내 삶 전체를 성령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성령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고, 내 말과 생각과 태도까지 새롭게 하실 때, 그제야 우리의 입술은 주님을 찬양하고, 이웃을 세우며, 생명을 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결심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혀를 드리는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날마다 기도하자. “주여, 오늘도 제 입술을 주관하시고, 제 말이 주님의 영광을 위한 통로가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