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로새서3:5,6)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이 말씀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강력한 영적 명령입니다. 세상에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오히려 "너 안에 있는 음란, 부정, 사욕, 탐심을 죽이라"고 선언합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단순히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거룩함은 "죽임" 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본성, 즉 육신의 정욕을 그대로 두고서는 절대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골로새서 3장 5~6절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 음란, 탐심, 정욕, 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상 숭배이며 진노를 부르는 죄라는 사실을요.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그분의 진노 아래에 살 것인가, 아니면 옛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 글에서는 ‘땅의 지체를 죽이라’는 이 말씀이 우리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실제로 살아낼 수 있을지 함께 묵상해 보려 합니다.
옛 사람
성경은 우리에게 “옛사람을 벗어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이 ‘옛사람’은 단순한 과거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는, 하나님 없이 살고자 하는 자아입니다. 옛사람은 자기 뜻대로 살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따르며, 자신의 명예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합니다. 겉으로는 경건해 보일 수 있지만, 속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존재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말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롬 6:6)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를 갖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이 십자가에서 죽는 사건입니다. 내 안의 옛 자아가 예수와 함께 죽는 것, 그것이 진짜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옛사람이 죽은 척하면서 다시 살아나려 한다는 것입니다. 질투, 음란, 분노, 탐심, 자랑, 자기연민…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옛사람의 숨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그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새 사람으로 입으라 옛사람을 벗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4장 24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단순히 죄를 끊으라고만 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새롭게 지으시고, 새 옷을 입혀주시길 원하십니다. 그 새 사람은 예수를 닮은 존재입니다. 겸손하고, 온유하고, 진리 가운데 행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음란,부정, 사욕,정욕, 탐심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하며,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죄를 나열합니다. 이 죄들은 단순히 외적인 행동이 아니라, 마음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죄업 본성의 실체입니다.
음란 : ‘음란’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성의 질서를 벗어난 모든 성적 타락을 의미합니다. 육체의 쾌락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과 타인을 도구처럼 여기는 죄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문화와 오락 속에 깊이 침투해 있어 더더욱 경계해야 할 영역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6:19)
부정: 부정은 단순히 음란의 외적인 행동을 넘어서, 마음과 생각 속의 더러움까지 포함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면을 썩게 만드는 죄이며, 성령의 임재와 기쁨을 앗아가는 독소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8)
사욕: 사욕은 절제되지 않은 욕망, 통제되지 않은 감정을 뜻합니다.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될 때, 사욕이 됩니다. 이 욕망은 쉽게 죄를 향해 흘러가며, 결국 사람을 지배하게 됩니다.
악한 정욕: 정욕 자체는 ‘욕구’지만, 여기에 ‘악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즉, 선한 목적을 벗어난 왜곡된 욕구, 하나님 없이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정욕은 눈으로 시작해 마음을 불태우고 결국 행동으로 옮겨지며,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탐심: 탐심은 더 가지려는 마음,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이 죄가 무서운 이유는, 겉으로는 성공과 성실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 라고. 하나님보다 물질, 성취, 자아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탐심입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들: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강하게 갈망하고 있습니까? 나의 욕망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그 뜻을 밀어내고 있습니까? 내 마음 안에 자리 잡은 정욕과 탐심은 어떤 방식으로 나를 지배하고 있습니까?
이 다섯 가지 죄는 단지 개인의 문제나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는 본질적 죄입니다 (골 3:6). 그러므로 우리는 가볍게 넘기지 말고, 말씀 앞에서 날마다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버리라
성경은 수많은 ‘하지 말라’는 경고를 넘어서, ‘버리라’는 명령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버리라’는 단어에는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의지를 담은 결단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것을 마음에서 지워내고, 삶에서 던져버리며, 다시는 붙잡지 않겠다는 행동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 말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또한 골로새서 3장 8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버려야 할 것들: 음란과 탐심, 부정과 정욕 분노와 비방, 거짓과 교만 미움과 시기, 용서하지 않음 이 모든 것들은 새 사람의 옷 위에 얹을 수 없는 더러운 옷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벗어버리고 내려놓아야 할 짐들입니다.
왜 버려야 합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죄 된 본성과 함께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새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여전히 과거의 죄업 본성과 씨름하며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버려야만 진짜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버릴 때, 주님은 의와 평안, 기쁨을 옷 입혀 주십니다.
묵상의 질문: 나는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품고 있는 옛사람의 잔재가 있는가? 하나님이 내게 오늘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 죄를 미루고 있지는 않는가, 아니면 정말 버릴 준비가 되었는가?
버림은 아픔을 동반하지만, 영광을 가져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며 ‘버릴 것’을 버릴 때, 그 자리에 주님의 은혜와 새 생명이 채워질 것입니다.
결 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순히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죽이라', "벗어 버리라", '버리라" 고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거룩은 제거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음란과 부정, 사욕, 정욕, 탐심 등 우리 안에 깊이 뿌리박힌 옛사람의 성품을 더 이상 관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며, 결국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단절시키는 영적 독소입니다.
"버리라'는 말씀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자유의 문입니다.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새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은 존재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내가 너를 새롭게 하기를 원한다.' 이제,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계속 품고 살 것인가, 아니면 버리고 주님을 따를 것인가?